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딘 소장 구출 작전설 (문단 편집) == 역사 왜곡의 시작과 국방부의 부정 == 딘 소장 구출 작전설의 시작은 [[6.25 전쟁]] 종전 후 [[교통부]]가 1953년 12월 24일 발간한 역사책 '한국교통동란기'에서 [[김재현(철도 기관사)|김재현]] 기관사 공적(우군을 구출타가 항목, pp. 326~331)과 장시경 신호원 공적(포위망을 뚫고 항목, pp. 158~161)을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한국철도공사가 [[대한민국 철도청|철도청]]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딘 소장 구출 작전'을 철도공무원들의 공적으로 소개하였고 [[국가보훈부]]도 검증없이 받아들여 대대적인 현양사업이 진행되었고 흡사 미군 장성 구출 작전이라는 [[전쟁 영화]]의 [[각본|시나리오]] 같은 화제성 때문에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보도되면서 '딘 소장 구출 작전'은 실제로 실행된 작전이며 완벽하게 검증된 공적처럼 자리잡으며 확대·재생산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물론 언론사에서도 모르고 있었지만 철도공무원들의 '딘 소장 구출 작전' 수행은 [[대한민국 국방부]]의 역사기관들이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전사(戰史)로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가 1979년 발간한 6.25 전쟁 공식 전사(戰史) - [[https://new.mnd.go.kr/user/imhc/upload/pblictn2/history_of_war_in_korea02/index.html|한국전쟁사 제2권 지연작전기 (p. 536)]]의 대전 전투 [[절(책)|절]] 연구 항목에서 국내와 미국 측 자료를 통해 작전 목적을 비교 분석한 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생존 철도공무원들의 증언에서 모두 이 열차작전의 목적이 딘 소장의 구출에 있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리며 '딘 소장 구출 작전'은 와전이라고 못 박았으며,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8년에 발간한 현재 시점에서 최신 6.25 전쟁 공식 전사(戰史)라고 할 수 있는[[https://new.mnd.go.kr/user/imhc/upload/pblictn2/625_06/index.html|6.25전쟁사 제4권 금강-소맥산맥선 지연작전 (pp. 161162, 주석 p. 217)]]에서는 '대전역 보급품 후송 실패'라는 제목의 단락으로 기술하여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닌 '보급품 후송 작전'이었음을 명확히 하였다. 특히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소속 [[전쟁기념관]]에서는 2020년에 발간했던 학예지 - [[http://archives.warmemo.or.kr/rsrch/detail/rsrchDetail.do?MID=UM00020&archvNttNo=3725|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 (pp. 118123)]]에서 기밀해제된 미 제24보병사단 [[정보참모|정보참모부(G2)]] 보고서를 국내 최초로 입수하여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닌 '보급품 후송 작전'이었음을 이론의 여지없이 입증하여 기술하였고, 작전 목적의 오해에 대해 각주를 통해 한번 더 자세히 설명하였다.[* '6.25전쟁사 제4권 금강-소맥산맥선 지연작전'과 '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에서 작전 목적을 '딘 소장 구출'이 아닌 '보급품 후송' 그리고 기관차에 탑승한 미군을 '결사대원'이 아닌 '호송병'으로 정확히 기술하였지만, 철도공무원들의 증언에서 작전 목적과 호송병을 '결사대원'으로 오해한 점 이외에는 진실로 추정하여 호송병 30명이 탑승하여 29명이 전사했다고 기술한 부분은 향후 개정판에서 총원 6명에 전사자 없음으로 정정해야 할 팩트 오류이다.] * '호국인물총서 (1): 6·25전쟁 개전의 순간' 각주 발췌 >'''"당시 김재현 기관사의 기관차에 부여된 임무를 두고 거듭되는 오해를 별기한다. 당시 승무원인 현재영·황남호의 수기 증언을 비롯해 국내의 각종 문헌과 현양 행사에서는 당시의 철도 수송 임무를 딘 소장 구출 작전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대전 철수작전 당시 작성된 미 제24사단 정보처 보고서와 미 육군,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에서 각각 발행된 공간사, 딘 소장의 회고록 등에 따르면 이들의 임무는 대전역에 적재된 보급품을 영동역으로 철수시키는 것으로 딘 소장의 구조와는 무관한 임무였다.[24th Infantry Division G-2 Journal, Vol. 8, For the Period 191700K July to 221550K July 50 ; Appleman, Roy E., South to the Nakdong, North to the Yalu , Center of Military History, United States Army(1992), 169쪽; Dean,William F. and Worden, William L., General Deans Story , the Viking Press(1954), 37쪽;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6·25전쟁사 4: 금강-소백산맥선 지연작전』, 2008, 161∼162쪽]"''' 현재도 [[국민신문고]]를 통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와 [[전쟁기념관]]에 [[민원]]으로 문의하면 한국인 철도공무원들은 [[대전 전투]]에서 '딘 소장 구출 작전'이 아닌 '보급품 후송 작전'에 참여했다는 공식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는데 한마디로 한국철도공사는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의 전쟁사 연구 기관들이 부정하는 공적으로 혈세를 들여 현양사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